톨킨/글

[엘렘마킬] 전야

Rhindon 2018. 8. 21. 14:10

이것도 그냥 전에 썼던 것 중에 괜찮아 보이는 거...

사실 되게 별 생각 없이 썼어서 설정 망했을 듯



 엘렘마킬은 강철 계단을 서둘러 오르며 제 운을 저주했다. 몇 번이고 그는 발을 헛디뎠고, 몇 번이고 벽을 짚어야 했다. 철의 관문의 북쪽 탑은 수문장의 자리였지만 엑셀리온은 일곱 관문 어디에도 없을 것이었다. 미늘갑옷이 절그럭거렸다. 그는 아직 칼집에 꽂힌 검자루에 한 손을 말아쥐고 거듭 몸을 움직였다. 탑은 고작해야 일곱 층이었으나 꼭대기는 마냥 멀었다. 두 번째 나무의 관문에서부터 줄곧 달려온 전령이 그의 발치에서 헐떡였다.

 그러나 탑의 최상층에 이르러 창을 열어젖힌 엘렘마킬은 탈출의 길 쪽이 아니라 북녘 하늘에 눈길을 빼앗겼다. 하늘은 아침이 밝아오는 것처럼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지만 해는 막 저물었었고, 아리엔의 불길에 만년설 덮인 산봉우리가 녹아내릴 리도 없었다. 그리고 설산의 정찰병들은 흰 말에 올라타 검푸른 초원을 질주하고 있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머리가 차게 식었다. 창 아래 내다보이는 공터에는 급보에 모여든 병사들이 일곱 관문의 무장을 갖춰 열병해 있었고, 그들은 철의 관문 꼭대기에 선 엘렘마킬과, 그가 빼든 검에 일렁이는 시퍼런 화염을 보았다. 엘렘마킬은 저들 키의 열 몇 배는 족히 되는 높이에서 목청껏 외쳤다.

 "고개를 들어 북쪽을 보라!"

 그는 수문장은 아니었으되 경비대장이었고, 병사들은 일제히 그의 명에 따랐다. 개중 몇이 경악해 비명을 질렀다. 엘렘마킬은 이를 갈았다. 도망칠 수도 있었다. 퇴각해 도시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관문의 모든 병사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나.

 "보라, 곤돌린의 방벽은 깨어졌다. 모르고스의 벌레들이, 시체 뜯는 까마귀가 몰려든다! 그대들은 두려워 하는가?"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두어 명은 울먹이기 시작했으나 다른 이들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아니오, 하고 전령이 그의 곁에서 속삭였다. 젊은 그는 돌의 관문의 가장 어린 신병이었다. 엘렘마킬은 잇몸이 드러나게 웃으며 검을 창틀에 휘둘렀다. 철과 철이 만나 불꽃을 튀겼다.

 "그대들은 두려워하는가!"

 병사들은 창대를 바닥에 쿵 찧었다. 청동의 문에서 온 장교가 도끼를 치켜들었고 그의 부대가 그와 함께 함성을 질렀다. 엘렘마킬은 얼마 간의 희열마저 느꼈다. 이는 그의 마음 속에 솟아오른 갈망인 동시에 저 밑의 병사들에게서 옮아온 맹목이었으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불러 일으키는 동조는 영주의 힘에는 미치지 못할진대 그가 부려야 할 이들은 그와 함께 격노하고 있었다.

 "그대들은 두려워하는가! 두려워 할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본디 가장 먼저 죽어야 할 자들이 아니었더냐!"

 세상이 무너질 때 혼란에 빠진 군중을 몰아붙이기 어찌나 쉬운지 엘렘마킬은 페아노르의 반란으로 익히 배웠었고, 이제 그는 자신이 숨이 멎는 순간까지 한 시라도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임을 알았다. 병사들이 짐승처럼, 주인의 명을 기다리며 발버둥치는 사냥개들처럼 외었다, 죽음, 죽음, 죽음을. 엘렘마킬은 뒤집힌 세계를 딛고 일어섰다.

 "나무의 관문은 재로 화했으며 돌의 관문은 무너져 내렸다. 불뱀이 툼라덴 평원을 가로지르는구나! 우리 저항은 끝내 소옹없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허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모르고스의 손끝이라도 할퀴어라! 우리 군주 핀골핀을 기억하라!"

 엘렘마킬은 창 너머로 몸을 날렸다. 벽을 차며 공터에 내려앉은 그가 검을 높이 들었다.

 "이제 탑으로, 탑으로! 문을 걸어잠그고 안팎을 경계하라. 죽음을!"

 그리고 그는 검을 관문의 백철에 내리쳤고, 종소리같은 울림이 공터를 삼키는 아래 병사들이 달려나갔다. 엘렘마킬은 손짓으로 도끼를 올렸던 장교를 불렀다.

 "로퀜roquen, 그대 부대는 나와 함께 청동의 관문으로 간다."

 젊은 신다가 입꼬리만으로 슥 웃었다. 엘렘마킬은 다시 나머지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적이 어디서 나타날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관문의 이점은 오직 높이였고, 철의 울타리는 벽이 아니라 받침대가 되어야 했다. 또 잊은 것이 있을까.

 "카노cano!"

 그제야 계단을 다 뛰어내려온 듯한 전령이 그를 불렀다. 엘렘마킬은 잠시 망설이다 전령의 앳된 얼굴에 마음을 굳혔다.

 "말을 탈 줄 아나, 오타르ohtar?"

 엘렘마킬은 탑으로 달려가는 병사 하나에게 말들을 내보내고 문을 봉쇄하라 지시했다. 병사가 그를 올려다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흐릿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는 전령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도시로 가서 상황을 알리거라. 할 수 있겠지?"

 "두 관문이 무너졌고 경비대장 엘렘마킬은 남은 문을 지켜내려 합니다."

 전령이 똑부러지게 답하고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카노, 개인적으로 전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네 대장은 뭐라 하더냐?"

 전령은 고개를 푹 숙였다. 엘렘마킬은 다시금 북쪽 하늘을 보았다. 꿈틀거리는 용의 윤곽을 알아볼 법도 했다. 엑셀리온의 백마가 그에게 입질해 와, 엘렘마킬은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고삐를 전령에게 건넸다.

 "보론웨를 만난다면, 경비대장 엘렘마킬이 안부를 전하노라 해 주렴."

 청동의 문의 장교가 엘렘마킬을 불렀다. 그는 전령에게 급히 목례하고 관문으로 뛰듯 다가섰다. 장갑 낀손으로 관문을 두드리자 왕관의 기둥 양편으로 문이 열렸다. 회색 군마에 오른 엘렘마킬이 박차를 가했다.

 말을 탈 수 있을 만한 평탄한 길은 넷째 관문,  구부러진 쇠의 문에서 끝났으나 엘렘마킬은 걱정하지 않았다. 금과 은의 관문을 지나며 엘렘마킬은 경비병들을 닦달해 일으켜 세웠고, 일부를 뽑아 데려갔다. 길이 조금씩 아래로 처져 내리막으로 변했다. 그들이 구부러진 쇠의 문에 다다랐을 때 예상했던 대로 적은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얽힌 쇠울타리 너머, 등불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붉은 눈이 쌍쌍이 안광을 뿌렸다. 늑대와 거미와 삵과, 온갖 맹수의 거죽을 덮어쓴 괴물들의 모습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쩍 벌어져 침을 흘리는 거대한 아가리였다.

 엘렘마킬은 소리쳐 쇠의 문의 네 탑의 병사들을 부르고, 금과 은의 관문의 궁수들을 올려보냈다. 독수리 투구를 쓴 경비대원들이 환호하며 탑을 내려왔다. 그러나 너무 이르게 두꺼운 쇠의 관문은 괴물들의 이빨에 뜯겨나가기 시작했고, 엘렘마킬은 쇠의 경비대와 청동의 관문의 병사들을 한 데 모았다.

 "산다스탄sandastan!"

 쇠의 경비대의 검은 방패가 포석 깔린 길바닥을 내리찍었다. 경비대가 받아 외쳤다. 산다스탄! 길목을 틀어막은 방패벽 뒤로 말에서 뛰어내린 청동의 관문의, 네브라스트의 신다르 병사들이 도끼를 고쳐잡았다. 관문 한가운데 엮어진 소론도르의 조상이 서서히 뭉그러졌다. 탑에서 화살이 빗발쳤으나 골짜기를 메울 요량으로 밀려오는 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 쇠막대가 휘고 부러지고 아예 찢겨 나가는 것을 그들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엘렘마킬은 그러나 두 손 놓고 관문의 함락을 기다리려 하지는 않았다.

 그가 한 팔을 들자 궁수들은 활을 놓았다. 관문은 충분히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틈에 미리 지시를 받은궁수들은 기름통을 끌어냈던 것이었다. 구부러진 쇠의 관문 너머, 가파르게 강하하는 길 위로 불붙은 기름이 쏟아졌다. 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적의 몸뚱이를 타고 흘러 바닥에 닿은 불은 매끈한 길을 타고 홈통의 빗물처럼 흘러내려갔다. 할 일을 다한 궁수들이 골짜기 양쪽 벽을 타고 잽싸게 방패진 뒤로 넘어 왔다. 관문이 기어이 끊어져 열렸을 때, 화염에 휩쓸리지 않았던 괴물들은 검은 방패에 얕은 물결처럼 밀려 왔다가 도끼에 난도질당했다.

 하지만 기름은 곧 타 없어지고, 불은 꺼질 터였다. 중상을 입은 병사 하나의 신음은 벌써부터 다른 이들의 흥분을 꺾고 있었다. 엘렘마킬은 고민했다. 병사는 방금까지 쉴새없이 도끼를 휘두른 이답지 않은 순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결국 그는 다친 병사를 제 말에 밀어올렸다.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라 해서 조금 덜 지려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고, 친족을 죽게 내치거나 직접 죽이는 것이야말로 진정 모르고스의 승리이자 엘다르의 참패일 것이었다. 엘렘마킬은 자조하며,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바라보는 경비병들에게 나직이, 또렷하게 말했다.

 "시간이 없다. 은의 관문으로 가자."

 "로셍그리올을 위하여!"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외쳤고, 엘렘마킬은 미소지었다.

 "이제 깨어나라, 전쟁이 우리를 찾아들었으니. 로셍그리올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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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건 모르겠고 디스 이즈 스트레인지 인 유 보론웨 오졌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