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대즈] 창
엑셀리온의 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층계에서 모이는 것은 말하자면 우연으로 시작되어 수없는 반복으로 굳어진 전통이었다. 시작은 아마, 아라고른도, 파라미르도, 에오메르도 없던 어느 원정 중이었을 터였다. 왕과 섭정 대신 도시를 지키던 돌 암로스의 대공은 첫째 손자를 함께 데려왔었고, 다른 세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자연히 그에게 떨어졌었다. 중요한 직무를 맡을 만한 나이는 아니나 그 아이들을 돌보기에 부족함 없는 지위였기에 알프로스는 반 년 간 거의 매일 그들과 함께 어울렸고 그 대부분은 엑셀리온의 탑에서였다.
얼마 전 선물받았다는 백마를 질릴 만큼 타고 돌아온 엘프와인이 창턱 밑에 널브러져 있으면 엘다리온은 창턱에 앉아 그에 닿을락말락 다리를 대롱거렸고, 엘보론은 계단에 담요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었다. 알프로스는 주로 작은 나무토막을 가져다 백조든, 배든, 아니면 어린 '사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깎아주고는 했는데 그가 그런 일을 즐겨서는 아니었다. 실제로 돌 암로스로 돌아간 후로 그가 조각칼을 만진 적은 손에 꼽았고 모두 동생들이나 수많은 사촌들의 끈질긴 조름이 있었던 끝에였다. 그러니 조
각은 그저 소일거리일 뿐 정작 그가 즐긴 것은 탑의 (아래서 열네 번째) 창 곁에서 함께한 시간이었다.
이제 그는 또 한 번 엑셀리온의 탑 높이서 창틀에 기대 밖을 내다보았다. 뒤편에 앉은 엘보론은 작아도 너무 작아진 담요를 접어 방석으로 쓰고 있었고, 엘프와인은 예전과 다름없이 발을 위로 하고 뒹굴었다. 피가 쏠려 새빨개진 귀만 제하면 임라힐을 빼닮은 모습이어서 알프로스는 차마 그쪽을 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엘다리온은 아직 오지 않았고, 알프로스는 그를 찾고 있었다.
그때 계단 위쪽에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검은머리 소년이 나타났다. 막 입을 열며 무어라 말하려던 그는 엘프와인의 다리에 걸려 거하게 넘어졌다. 하필 엘보론 위로! 날벼락을 맞은 엘보론이 벌떡 일어서며 엘프와인의 손을 밟았고 엘프와인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야!"
"엘다리온! 이게 무슨 짓입니까?"
엘보론도 빽 소리치고는 힘이 빠진 듯 주저앉았다. 엘다리온은, 맙소사, 긁힌 데 하나 없이 말짱하게 일어나 뒷덜미를 긁적였다.
"숫자를 잘못 셌거든? 다음 창문에서 자고 있었어."
그러고는 태연하게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은 뭘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