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레델] 재회
수소님!!!!! (빼액)
처음에는 그저 소문이었다. 그런 소문이야 이미 열댓 번쯤 돌았었고, 사실이었던 적은 두 번 뿐이었기에 아레델은 처음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카란시르, 암라스. 어렴풋이, 다음 차례는 암로드가 되려나 넘겨짚어 보기는 했었다. 소문을 단지 소문으로만 치부한 데는 그런 이유, 그러니까 돌아오더라도 얌전했던 쌍둥이가 마저 돌아오지 악명높은 셋째가 오지는 않을 거라는 짐작도 한몫 했던 것이었다. 암로드와 암라스도 시리온 즈음에 와서는 형들 못잖은 동족살해자가 되어 있었으나 그녀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투르곤은 달리 판단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투르곤이 난데없이 그녀에게 서책 더미를 안겨주며 백모님께 돌려드리라 일렀을 때 그걸 예상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책등을 슥 훑어보고는, 고대 건축 양식이라니 곤돌린을 재건할 맘이라도 든 거야, 묻고서 기꺼이 심부름을 맡았다. 투르곤이 네르다넬은 아니라도 그녀의 아들들이라면 치를 떠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가져다주는 김에 암라스 얼굴도 한 번 보고, 시답잖은 사냥 얘기나 좀 늘어놓은 다음 나중에 투르곤에게 뭐 하나 받아내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아무 준비 없이 네르다넬의 대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어준 카란시르가 뻣뻣하게 뒤뜰 정원으로 가보라 했을 때도 그가 제 어머니를 말하는 것으로 흘려들었다. 네르다넬의 저택은 마흐탄의 일족이 머무는 곳에서도 거의 가장자리에 자리했던 터라 뜰은 울타리 없이 곧장 숲과 이어져 있었다. 드문드문 색 입힌 조각상이 사람처럼 늘어섰다. 야반나와 오로메의 마이아르는 그런 걸 좋아하더라고 네르다넬이 설명했던 것 같았다.
글쎄, 먼 옛날 만웨의 홀 끝에 박힌 사파이어는 푸르렀고 로리엔의 발치를 감싼 얇은 대리석은 그림자로 이음매 없이 흘러들었으나, 네르다넬은 이제 관심사를 돌린 듯 보였다. 그녀가 조각에 특별한 흥미가 없기는 했어도, 허벅지까지 웃자란 잡초 사이 놓인 석상들을 해석하려면 차라리 철학자가 필요하겠다 싶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왠지모를 불안에 눈동자를 굴리다가 문득, 그나마 사람 꼴을 갖춘 형상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곧장 나아갔다. 왼편으로 기묘하게 거미를 닮은 검은 석상이 스치자 그녀는 조금 실색하며 거리를 벌렸다. 사실주의든 아니든 네르다넬은 여전히 생동을 불어넣는 데 몹시도 뛰어난 이였다.
거미 때문은 아니었다.
서책이 와륵 쏟아지고 공허한 거리가 머물렀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잡았다. 불타오르는 흰 배의 환영이 눈앞을 스쳤다. 그녀는 손을 내려 그와 손가락을 엮고 마디와 마디가 경첩처럼, 톱니처럼 맞물릴 때 달렸다, 뒤를 마주보며. 그들은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래 전 이리 달렸었다. 아버지들의 회담이 지루해지면, 가족 식사라던 만찬이 늘어지면 맞잡은 손에는 힘이 들어가 그들은, 왕궁 뒤뜰이든 샘물과 보석 가루 흐르는 티리온 길거리든 아랑곳 않고 이내 내딛는 걸음을 따르고는 했으니까. 미스림에서 사촌 형제가 그녀의 아버지 앞에 무릎 꿇었을 때, 도르소니온의 햇살 아래 피나르핀의 아들들 등뒤로 눈이 마주쳤을 때 이것을 갈망했고 화염을 보았었다, 그리고 투나에 적막이 내리고도 기나긴 시간이 흐르기까지 그는 방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제, 가쁜 숨으로 뱉어냈다.
"이릿세."
오래 전 그랬듯 그들은 달렸고 발밑으로 잔가지가 부러졌다. 한때 이 숲에서 오로메를, 한여름 너도밤나무가 닮은 권능을 만났었고 아글라레브의 검을 치켜든 켈레고름은 알다론의 이름을 부르짖었었다. 그제서야 무언가 깨달았으나 이는 마음에 남지 못했음에 그녀는 이를 잊었다, 금으로 자아낸 나뭇잎 사이로 별빛 비치는 천의 동굴에서 그는 기억했는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나, 로스가르에서 드넓은 대지를 바라보았을 그는 정녕, 알쿠알론데의 산 돌의 아치 위에 올라 검은 파도를 마주했을 그는 정녕 기억지 못했는가? 그가 다시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들숨을 헤아리며 내닫았다. 이릿세, 낯익은 음성은 우거진 여름으로 사라졌다.
그도, 그녀도 이후에 되찾지 못할 숲의 한 구석에서 그녀는 돌아, 잡지 않은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귓가에 소리치던 바람이 잦아들자 침묵 아닌 침묵이 내려앉았다. 자장가처럼 평화로운 고요 가운데 그녀는 발꿈치를 들어 그에게 입맞추었고, 놀란 눈이 부드럽게 풀리기 전 손을 떼고 속삭였다. 이건 아무 의미도 아냐. 공허가 다시 그들 사이를 메웠고 그녀는 달아났다.
그녀는 돌아올 수밖에 없을 테다. 그러기 위해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