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투르곤+핀로드] Serac

Rhindon 2018. 10. 22. 16:19

 "이제 어쩔 셈이야? 미처 묻지 못했었지. 이릿세도 같이 간다며?"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댜. 핀로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미 그는 네브라스트니, 리나이웬 따위를 두서없이 떠올렸고, 그가 문장을 엮어내기를 미룬 것은 단지 떠나는 이들을 조금 더 지켜 보기 위해서였다. 길이랄 것 없는 평원을 곧게 질러 가는 한 무리의 기치가 흰 빛으로 어른거렸다. 완공을 한참 남긴 성벽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흉벽이 다져지고 망루가 솟아오른다면, 강물처럼 번득이는 은백색 창날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투르곤은 그것을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

 "맞아. 네브라스트...... 서쪽 바닷가를 그렇게 부르더라고. 벨레리안드 경계보다는 북쪽이지만 기후가 온난해서, 히슬룸같지는 않아."

 "어련히 잘 골랐겠지. 백부님과는 이야기가 끝난 거야?"

 투르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걸터앉은 돌 윗면을 쓸었다. 다음날이면 성벽은 한 층 더 높아질 테고, 바사의 빛살이 다시 이곳에 닿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바라드 에이셀의 모든 돌덩이가 산산이 부스러지지 않는 한, 그리고 어쩌면 그런 후에도. 발밑으로 성벽이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그렸다.

 "그런 느낌 들지 않아? 그러니까 말야,"

 목재 지지대에 기대 선 핀로드가 팔을 쭉 뻗어 동쪽을 가리켰다.

 "여기서 벽을 박차고 뛰어내리면, 그대로 도르소니온을 지나, 동부 경계를 지나, 어쩌면 산맥마저 넘을 수 있을 것 같잖아."

 "딱 너같은 감상인걸, 핀다라토."

 핀로드는 크게 웃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투르곤은 저 아래를 곁눈질하고는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쉬었다. 다시 보니 아찔한 높이였다.

 "너는 어디로 갈 건데?"

 "글쎄, 일단 도리아스. 그래도 내 외종조부시니까."

 "네 동생들도 같이?"

 아니, 아르타니스만, 하고 대답하며 핀로드는 조금 미간을 좁혔다. 앙가라토와 아이카나로는 도르소니온으로 가겠대. 위험할 텐데.

 "그래서 그쪽 셋째가 힘라드를 맡겠다고 했던 게군. 친했지?"

 "그리고, 내가 마이티모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래서 카르니스티르가 동쪽 산골짝에 처박히게 된 걸 테고. 너무 나쁘게 생각지 말라고는 못하겠지만, 굳이 경계하진 마, 이젠 같은 편인데."

 그러나 핀로드의 안색은 썩 좋지 못했고, 투르곤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한동안은 저것들과 마주칠 일 없을 테니. 설마 바로 떠날 생각은 아니지, 핀다라토? 이만 내려가자."

 핀로드는 훌쩍 뛰어내려 그의 팔을 잡았다. 성벽 안쪽으로는 북적이는 요새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핀로드는 잠시 멍하니 섰다가 순식간에 활짝 웃었다.

"그래, 아직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