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켈레델+핀마에] 이유

Rhindon 2018. 8. 16. 17:00

 몇 년 전이었다면 가볍게 지나쳤을 일이었다. 혹은 양쪽 다 새하얀 웃음을 터뜨리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래서 어제는 말야, 하고 끊겼던 대화를 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날 일이 그렇지 못했던 것은 적어도 후안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 후안에게 얼만큼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 다른 의견이었지만.

 아레델의 흰 숄이 바닥에 떨어지자 후안은 그걸 잽싸게 켈레고름에게 물어 갔더랬다. 아레델이 미간을 좁힌 것도, 켈레고름이 입을 조금 벌린 것도 눈 깜박할 사이 끝났고 머지않아 둘은 대리석 열주가 늘어선 티리온 왕성의 회당에서 삿대질을 해가며 언성을 높였다. 개나 잘 간수하라는 데서부터 칠칠맞은 게 성낼 줄만 안다는 것까지, 차츰 더해간 말다툼은 시중드는 이들이 도망치듯 자리를 비우고, 후안마저 꽁무니를 뺀 지 한참 후에도 이어졌다. 그러니 겁먹은 얼굴의 시종 하나가 데려온 마에드로스가 그들을 보자마자 외친 뭐하는 짓들이야, 하는 고함도 어떻게는 당연했다.

 하필, 역시나 언질을 받고 달려온 듯한 핀곤이 때맞춰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순전히 불운이었다.

 "누구한테 소릴 질러?"

 핀곤이 한 팔로 아레델을 등 뒤로 당기며 되받아쳤다. 아레델은 핀곤을 밀어내려다, 우습다는 식으로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 그들을 내려다보는 마에드로스와 눈이 마주치고는 굳어버렸다.

 "아들은 머저리에 딸은 망나니라, 숙부님께선 좋으시겠어."

 켈레고름의 입에서 나올 때와는 결이 다른 조롱에 아레델은 말을 찾지 못했고, 켈레고름마저 눈치를 보았다. 그때 핀곤이 그녀의 손목을 놓고 앞으로 썩 나섰다.

 "그 말 다시 해보시지."

 그러고는 마에드로스를 후려쳤다.

 둔탁한 파열음이 울렸고 마에드로스는 뺨을 감싸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켈레고름이 짧은 비명을 지르면서 손을 뻗었다. 형님! 동시에 아레델이 핀곤의 팔을 붙잡았다.

 "오라버니!"

 "놔, 이릿세, 저게 지금......."

 핀곤은 말을 맺지 못했다. 아레델은 마에드로스가 핀곤을 걷어찬 것을 보지 못했고, 다만 마에드로스가 도로 발을 딛는 것으로, 핀곤이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신음하는 것으로 이를 미루어 짐작했다. 켈레고름은 반 박자 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 기겁해 손으로 입을 막았다. 갈 곳 잃은 시선이 교차했다. 그들이 다툰 것은 후안 탓이 아니었고, 핀곤이 이제 일어서 사촌 형제의 멱살을 잡는 것도, 저들이 열몇 살 아이들처럼 바닥을 구르며 치고박는 것도 그들 탓이 아니었다.

 후안이 컹 짖으며 피나르핀을 꼬리에 달고 나타날 때까지, 그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