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2018. 9. 23. 23:34

다고르 다고라스... 안드레스가 환생한다면



 독특한 아이였다. 쓰레기 더미를 맨발로 딛고 선 깡마른 아이는 그를 또렷이 직시했다. 넝마가 된 원피스 위로 걸친 단물난 트렌치 코트는 아이의 뒤꿈치까지 닿고도 다시 허리로 접을 수 있을 만큼 길어, 자락에 찌그러진 캔 같은 부스러기들을 매달고 있었다. 되는 대로 걷어올린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부스스한, 그래, 군용품이라고 나돌아 다니던 돼지고기 육포 같은 머리카락은 흙먼지를 뒤집어 써 원래 색은 추측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때묻은 얼굴에서 불꽃처럼 빛나는 회색 눈은 어찌나 낯익은 것이었는지. 달이 부서진 이래 인간이 그를 이처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탄식하듯 외쳤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아이는 입을 고집스레 다문 채 답하지 않았다. 가까운 하늘을 시뻘건 불덩이가 가로질렀다. 시인은 몸을 날렸다. 아이를 끌어안고 나뒹굴며 그는, 언뜻, 뼛조각이 와르륵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여겼다. 마라카스처럼.


 오래된 방공호의 문을 열자마자 썩은내가 닥쳐들었다. 이것저것 따질 여건은 아니었기에 그는 아이를 안으로 밀어넣고 저도 들어가며 문을 쾅 닫았다. 그 혼자였다면 그저, 저쪽 세계로 한 발짝 딛으면 될 일이었으나 아이와는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주변을 조금 맑게 틔울 힘 정도는 남아 있었고 냄새는 곧 사그라졌다.

 탁, 탁 하는 금속음에 이어 작은 불꽃이 튀었다. 아이는 어느새 구식 라이터를 들고 있었다. 저런 충전식을 본 게 얼마만이었더라. 반가웠다. 그리고 실로 그녀다웠고.

 "사엘린드."

 당신을 이리 뵐 줄은 몰랐습니다. 낡아빠진 신다린에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덧붙였다. 왜 하필 여기입니까. 이제 아르다는 고작해야 서녘으로의 길목, 마지막 전투가 닥치기까지 사수해야 할 쓰레기장에 지나지 않는데.

 "당신."

 아이가 신다린으로 답했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파르르 떨리는 불꽃은 손을 대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사랑스러웠다. 아이는 딱지 앉은 입술로 명확한 신다린을, 벨레리안드의 옛말을 만들어냈다.

 "내 꿈 속의 언어를 쓰는 당신은 누구요?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오?"

 시인은 목이 메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내 친족의 연인이여. 그러나 나는 시인임에 이 말을 사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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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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