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2018. 8. 21. 07:40

걍... 맘에 드는 부분만 잘라서 올리기



 안장 밑에서 군마가 거칠게 요동쳤고 손에 쥔 창자루는 피에 젖어 미끄러웠다. 비라도 한바탕 뿌려준다면 좋으련만, 고작 며칠 전 지난 난 둥고르세브에서마냥 어두컴컴하게 드리운 그림자는 전의를 지독히도 갉아먹었다. 무뎌진 손가락에서 창이 한 번 훅 튀어오르기가 무섭게 갑옷이 찢긴 자리를 향해 도끼날이 닥쳐들었다. 그는 가까스로 허리를 젖혔다. 기괴한 투구 속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말이 뒷발로 서 창을 든 오르크를 내리찍었고, 말에서 떨어지다시피 한 그는 등자를 당겨 밟으며 일어서 고삐를 놓은 왼손을 치켜들었다.

 "아이야 바르다 틴탈레, 엘렌타리!"

 손목에 감긴 가죽끈에서 대롱거리는 여덟 꼭지 별이 눈부시게 번득였다. 오르크들이 주춤한 틈을 타 그는 그대로 말을 달렸다. 등 뒤로 쿠루핀의 군기를 든 기수가 제 호위와도 떨어져 바짝 따라붙었고 힘라드의 기마병들이 그의 함성을 이어받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아 엘베레스 길소니엘, 보라, 불 밝히는 바르다, 별들의 여왕이여. 검은 연기가 자욱한 하늘 아래 요정의 창끝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어디선가 안개를 뚫고 늑대인간의 쇳소리와는 비할 수 없이 청량한 울음이 뿔나팔 소리와 얽혀 난전의 소음을 찢었고, 켈레브림보르는 기어이 켈레고름의 본진을 찾아냈다.

 후안의 길게 뺀 울음이 컹컹거리는 소리로 잦아드는 가운데 흰 말을 탄 켈레고름이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몇 발짝 뒤 쿠루핀은 검은 들지도 않은 채 흔들리는 시선으로 전장을 훑었다. 켈레브림보르는 아직도 환한 손목의 별을 허공에서 두어 번 돌려 제 위치를 알리고 백부가 선 곳까지의 거리와, 그 사이를 메운 적을 가늠했다. 강변의 적을 기습하려 기마대는 서쪽으로 빙 돌아와야 했지만, 병사들은 힘라드의 패배 탓에 필사적이었고 요정의 군마는 강인했으며 한 번 붙은 속도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는 입안을 짓씹으며 말머리를 틀었고 부대가 유연하게 그를 따랐다.

 그들은 적을 시리온 강변에서부터 비스듬하게 몰아붙였고, 켈레브림보르는 적의 의지가 팽팽하게 당겨진 것을, 그 의지가 그의 목전에서 마모되어 끊어지려는 것을 직업적인 만족감으로 읽어냈다. 켈레고름은 강과 기마대 사이 남은 적을 휩쓸며 능숙한 솜씨로 켈레브림보르의 후미에 붙었다. 매복에서 선봉으로 역할이 바뀌었지만 기마대는 원체 켈레고름과 쿠루핀의 추종자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고, 그들을 앞세운 페아노르 가문의 군대는 적군을 북동쪽으로 몰아내며 시리온 강물 같은 은백색으로 쇄도했다. 켈레브림보르는 부러진 창을 버리고 검을 뽑아들었고, 네 번째로 적의 졸개가 그와 검을 맞대는 대신 허둥지둥 달아났을 때 그는 급기야, 지난 몇 달 그를 옭아매던 절망마저 떨쳐내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텔페린콰르, 이만 돌아오너라!"

 켈레고름이 외치고는 퇴각 신호를 보냈다. 켈레브림보르는 칫, 하고 부관에게 손짓해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기마대가 넓게 퍼지며 흩어지는 적군을 주시하는 사이 본군은 둘로 나뉘어, 한쪽은 곧장 돌다리를 건너 톨 시리온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크릿사이그림 기슭에서 기다리는 이들을 데리러 달려갔다. 켈레브림보르는 힘라드의 피난민들까지 모두 다리를 건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찰병을 지목하고 손목의 별을 풀어 부관에게 건넸다. 머리가 도로 지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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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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