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2018. 8. 23. 16:55

썰 풀었던 거 끝부분 써보고 싶었음 (그리고 망했ㄷ)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검은 절벽 끄트머리, 땅에 정말로 닿지는 않은 채 어른거리는 페아는 육신을 가진 자의 눈에도 확연히 찢기고 이지러져 보였다. 핀곤은 가쁜 숨이 속도를 늦출 때까지, 그러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며 자리에 붙박인 듯 멈춰 있었다. 결국 그는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실로 몇천 년 전과 똑 닮은 모양새가 아닌가, 그는 자조했다. 사촌 형제가 과연 구원을 바랄지, 그를 구한다 해도 그가 용서받을 수 있을지, 자신은 그를 용서할 수 있는지.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촌의 죄악은 더욱 지독하고 그에게는 아무 의무가 없다는 것일 터였다. 맙소사, 투루카노가 지금 날 본다면 뭐라고 할까. 밤을 먹어 새까만 자갈은 발밑에서 덜걱거렸고 바닷바람은 갈수록 힘을 더해 휘몰아쳤다. 그리고 핀곤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제 와서야 그는 오래 미뤄 두었던 선택을 마주하고 있었다.

 상고로드림이 차라리 쉬웠었다. 그때 그는 어렸고, 사촌의 잘못은 그 아비에게 떠넘길 수 있는 것으로만 보였었다. 일부는 그러했고 대개는 그렇지 않았으나 어쨌든 핀곤은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을 그의 친구로 믿었다! 그러니 넬랴핀웨가 그의 친구인가는 중요치 않았다. 벗 된 자로서, 그에 더해 놀도란의 아들 된 자로서 그가 해야 할 바는 극명했다. 그러나 그가 그때 이런 생각을 한 번 떠올리기라도 했던가? 달님 얼굴에 흠집 하나 없을 적 세상은 날카롭고 단순했다. 그러나, 그러나.

 상고로드림에서 돌아온 직후 투르곤은 그에게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거냐 물었다. 그가 어떻게 대답했던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에 맞는 답은 아니었으리라. 마에드로스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왜 그리 간절했는지조차, 그는 도저히. 있는 줄도 몰랐던 긴장이 탁 풀렸다. 하프가 손아귀를 벗어나 조약돌 위로 떨어졌다. 적막이 깨졌다.

 "모든 새를 아끼는 왕이시여, 이제 자비를, 자비를!"

 자비를, 그는 정의가 아니라 자비를 구걸했고 이는 그가 사랑한 이가 죄인인 탓이었다. 한 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람이 멎었다. 문득 등뒤에서 찬란한 음성이 크게 부르짖었다.

 "불의 심장 바사, 당신의 시간이 밝아옵니다, 아 우르웬디여!"

 태양을 불러내는, 아침의 문을 열어젖히는 자신감이란. 말 한 마디로 도리아스 숲에 침묵의 저주를 내렸던 음유시인이 숨이 턱에 닿은 채 내달아 와 외친 소환은 응답받았다. 창공에 거대한 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나이레가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들려주던 옛이야기 속에서는, 위대한 발라르 중에마저 아침의 문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했었고, 핀곤은 금과 은의 거대한 홍예를 타고넘는 수증기를 보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때아닌 새벽이 박차오르자 그는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로한의 왕자는 저와 제 친족들을 낯선 이름으로 불렀었다. 핀곤은 가까스로 마에드로스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새벽, 일출, 왼손잡이. 걸맞으면서도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이름에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으나 그뿐이었다. 광휘가 가라앉자 그는 달려나갔다. 세상의 끝에 선 나는 결국 너를 포기할 수 없기에, 네가 살아 아르다를 걸어야만 하기에. 그것이 영원한 어둠보다는 낫지 않은가. 나는 끝끝내 네가 바라는 죽음은 주지 못할 것이라. 바깥의 공허로 열린 아침의 문을 향해 페아가 훅 움직이는 찰나 핀곤은 육체를 벗어던졌다.

 관문이 서서히 닫히며 태양의 배가 하늘 높이 솟았다. 라우렐린의 열매가 발하는 빛살 아래 휘청이는 페아는 내뻗은 의지에 쉽게도 잡혔다. 다에론의 경악에 찬 비명은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다음 걸음은 허공을, 죽음의 길 칼반다를 딛었다. 품 안의 페아가 꺾였다.


 만도스로 돌아오는 거칠고 어두운, 모든 길 가운데 가장 빠른 길을 핀곤은 쉽게 잊어버렸고,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긴 기다림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

로스트 테일즈 보고 싶다 (속마음)

엘프와인은 그냥 약간의 이름 개그... 두 번 죽은 요정들은 삶으로 돌아오려 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죽음의 고통이 없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뇌피셜이 있음 날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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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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