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2018. 10. 24. 19:38

곤돌린 되게 SF 에유로 보고 싶음



 "못해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보론웨는 난처히 고개를 저었다. 황무지에서 가까스로 만난 사람이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못하는 건 못하는 거였다. 그가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는 새 투오르가 다시 물었다.

 "밀수꾼이라면서요?"

 "밀수꾼이라니! 장거리 운송 전문 비행사라고 하면 어디 덧납니까?"

 투오르가 헛웃음을 감추려는 듯 쿨럭거렸다. 보론웨는 한 번 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그는 네브라스트에 와 있었다 - 그리고 솔직히,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버려진 행성이 네브라스트 말고 또 있을 것 같지는 않았고. 대기 조성은 완벽했고 저 멀리 비치는 도시의 윤곽은 명백히 놀도르 식이었다. 땅 위에는 산 것이라곤 마른 덤불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머리 위로 갈매기 여럿이 긴 울음을 빼며 선회했다. 네브라스트, 그 중에서도 비냐마르 부근일 법했다. 비상 착륙으로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의 비행정은 이제 까만 연기나 날리고 있었으니 그 운이 그다지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렘바스 패킷 하나를 더 북 찢어 투오르에게 건넸다. 외지인의 나이는 늘 가늠키 어려웠지만, 굳이 추측하자면 스물세 살쯤 될까.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보론웨는 제 손의 부스러기를 탁탁 털어내고 말했다.

 "문제가 많아요. 일단 나는 아직 가문에 속해 있지 않고, 경비대원도 아니에요. 다른 누구를 보증해 줄 신분이 아니란 거죠. 그렇다고 당신을 숨겨 들어가자니 이후 일을 알 수 없죠. 키르단의 친족이란 것도 대역죄엔 도움이 안될 거예요.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건......."

 그는 집게손가락으로 몇 발짝 떨어진 투오르의 비행정을 가리켰다.

 "저걸로는 이 항성계를 벗어나기도 힘들 거란 점이라고요. 애초에 여긴 어떻게 온 겁니까? 여기 출신은 아닐 텐데."

 "놀도르의 문을 통해서요."

 투오르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보론웨는 입을 뻐끔거리다 다물었다.

 "니르나이스 후에 그 관문은 폐쇄됐다던데요."

 "도움을 받았어요. 겔미르와 아르미나스라고, 놀도르였거든요."

 갑자기 골치가 아팠다. 보론웨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내게 했던 것과 같이 도움을 청했습니까? 울모의 이름으로? 투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론웨는 인상을 구겼다.

 "마지막 문제가 뭔지 압니까? 발라들은요, 내 왕의 사자들을 모조리 죽였어요. 나만 빼고! 밀수꾼 쥐새끼가 눈꼽만큼 남은 신앙심으로 목숨을 걸었는데! 말해보세요, 울모의 사자여. 나는 왜 당신을 도와야 하는 겁니까?"

 "나도 원해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투오르가 와락 맞받아쳤다가 덧붙였다.

 "꿈이긴 했어요. 곤돌린을 찾는 게. 그리고 당신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나요?"

 "이봐요, 어쨌든 못 간다고."

 그는 무릎을 끌어안고 주저앉았다. 네브라스트. 여기는 확실히 네브라스트였다. 비행정을 고치고, 도시까지 다가가서 시스템을 되살려 게이트를 하나 연다면 난 타스렌으로야 어떻게든 돌아갈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곤돌린은 무리다. 그런 요지로 말을 꺼내려 할 때 문득 투오르가 말했다.

 "도시에 다른 비행정이 하나 있던데요."



 어두침침한 주점 안에서 보론웨는 술병을 꽝 내려놓았다. 엘렘마킬이 헛웃음을 지었다.

 "아버님이 뭐라셔?"

 "두더지 가문에 들어가래신다. 원 어이가 없어서."

 보론웨는 술을 따르는 것도 귀찮다는 듯 엘렘마킬의 잔을 빼앗아 들이켰다. 그러고도 투오르의 잔에까지 눈독을 들이자 엘렘마킬은 성급히 새 병을 따서 제 잔에 도로 부어주고는, 일단 앉으라며 손짓했다. 투오르는 난처하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보론웨, 요즘 돌아가는 판이 밀수꾼 노릇에도 너무 위험해졌어."

 보론웨는 벌레씹은 표정으로 두 번째 잔을 홀짝였다. 조명이 깜빡거렸다. 어느 도시에나 구질구질한 변두리는 있기 마련이고, 곤돌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니르나이스 이전까지만 해도 고상한 식당이었을 건물도, 티 하나 없는 흰빛이었을 이 구역 전부도, 강철의 관문이 세워지고부터는 온갖 밑바닥 인생들이 기어드는 종점이나 다름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엘렘마킬은 어색하게 경비대 제복의 목깃을 매만졌다. 어째 모여드는 시선이 험상궂었다.



*

보고 싶은 것만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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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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