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학교 뒷마당에는 거대한 너도밤나무가 하나 서 있었는데, 그 나무는 크기뿐만 아니라 거기 붙은 전설같은 괴담으로도 재학생들 사이에 꽤 유명했다. 전대, 또는 전전대 교장이 야반도주하려던 딸을 붙잡아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고는 사다리를 치워버렸다는 것이 주가 되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고, 둘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성향 또한 구분되고는 했다. 첫째 부류는 그 딸이 마녀의 술수로 머리카락을 땅에 닿을 만큼 길러 - 문제의 너도밤나무는 가장 낮은 가지가 기숙사 사 층 창문 높이에 뻗어 있었다 - 나무를 내려가 연인과 재회했다고 믿는 이들이었고, 대개가 눈망울 맑은 하급생들이었다.
담배 냄새가 옷자락에 찌든 나이든 소년들이 주를 이루는 둘째 부류는 망아지만한 들개 떼가 교장의 딸을 찢어죽였다거나, 물고 달아났다고 떠들고는 했지만, 실은 진정으로 이 무리에 속하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송곳니를 번득이는 들개에 매료되기는 할지언정, 그리고 하급생들에게 장난처럼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떠벌릴지언정 온 진심으로 그런 결말이 낫다고 평할 수 있는 이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분명 소수의 예외는 존재했고, 어린 투린은 확고히 그에 속해 있었다.
"그러니 말해 봐, 정말 죽었을까?"
투린은 들개 떼에는 하등 개의치 않는 듯 태연하게 너도밤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고, 그 곁에 쭈그린 학생은 발꿈치를 든 채 앞뒤로 몸을 기울였다 바로하기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셋째 부류, 즉 어떤 경로로든 너도밤나무에 얽힌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어 오히려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쪽이었다. 그 당시 근무했던 교사의 태반이 학교를 떠났고 남은 이들 중에서도 사건의 전말을 온전히 파악하는 이는 없었으나, 벨레그 쿠살리온은 누군가 너도밤나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마치 자신이 교장의 딸이 사라진 그날 밤을 직접 보기라도 했던 양 희미하게 웃고는 했던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가장자리 번진 미소를 지은 채, 투린의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되물을 뿐 제대로 된 답을 주지는 않았다.
"글쎄, 꼭 알아야겠어?"
투린은 익숙하다는 듯 픽 한숨을 쉬었다. 쿠살리온의 손끝에서는 담배 대신 목재 향이 났고, 옷매무새는 어딘가 허술했다. 그는 결코 단추를 목깃까지 채우는 법도, 타이를 제대로 매는 법도 없었다. 재킷은 빼놓기 일쑤에 때로는 셔츠 바람으로 돌아다니기까지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은 그가 떠날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수업을 빠지고 하급생과 뒷마당에서 농땡이를 피워도 끝내 그는 졸업식을 마치면 전장으로 향할테니까. 그것은 괴담 따위보다는 학교를 훨씬 무겁게 짓누르는,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류였고, 쿠살리온은 그 무리의 이른바 '사랑받는' 지도자였다. 그리고 투린은 자신의 위치를 알았고, 안다고 생각했고, 역시나 입을 다물었다.
*
애매한 분위기 투벨 보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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