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2018. 8. 26. 12:32

프랑켄 단하미 봐주세요 오졌음 항마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오졌... 안나타르가 일종의 무신론자였단 얘기도 재밌잖음

 

 

 그건 정말이지 뜻밖의 말이 아닐 수 없었고, 그래서 켈레브림보르는 시약병을 툭 떨구는 것으로 반응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미르다인의 기술로는 당연한 일이었으나, 실금 하나 없이 돌바닥에 내려앉은 약병은 데구르르 굴러 서랍 밑으로 들어갔다. 안나타르는 혀를 찼다.

 "공께서는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존재야 물론 믿지요. 나는 까마득한 고대에 그와 함께했던 아이누가 아닙니까?"

 그럼 그렇지, 켈레브림보르는 멋쩍은 한숨을 쉬며 무릎을 꿇고 앉아 서랍 밑을 들여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빼낸다냐. 그때 어깨를 잡는 손길이 있었다.

 "잠깐 비켜봐요, 페아나린케."

 안나타르는 공방에서조차 풀어헤친 머리카락과 질질 끌리는 옷자락을 고집했고, 켈레브림보르는 그럼에도 마이아에게 검댕 하나 묻는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바닥에 뺨이 닿을 듯 몸을 숙이자 주춤하고야 말았다. 안나타르는 손끝으로 바닥을 톡톡 치며 고양이를 부르듯 말했다.

 "이리 온, 어서."

 그러자 마치 누군가 민 것처럼 작은 유리병이 도로 굴러나오는 것이었다. 바닥에 무릎을 댄 채로 병을 들어올리며 안나타르는 화사하게 웃었다.

 "짠!"

 "그거 과시였죠?"

 에이, 좀 넘어가요. 안나타르는 천장을 보는 시늉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일어나려는 기색이 없기에 켈레브림보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공방에는 둘뿐이었고 작업대에 가려 문은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인 질문에 알맞은 기회 아닌가.

 "존재를 믿으신다면, 뭘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안나타르는 유리병을 척 들어올려 왼쪽 눈 앞에 댔다. 투명한 푸른빛 시약에 금안이 일렁였다.

 "나는 육신을 입었으니 아르다에 영향력을 행사하지요. 그러나 일루바타르는요?"

 "유일자께서도 에아와 아르다를 돌보시지 않습니까? 당신같은 마이아르나, '세상의 권능'을 통해서요."

 "발라르는 이 땅을 버렸어요."

 당신을 보내지 않았느냐 되물으려다 그는 다른 말을 꺼냈다. 어차피 이 아울렌딜은 서녘의 사자처럼 굴 때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리지는 않았지요. 그들은 여전히 이쪽 해안의 일에 개입하니까요."

 "어떻게 증거할 셈인가요? 저 린돈의 고리타분한 요정들처럼 당신들이 축복받았다 우기려는 건가?"

 켈레브림보르는 점잔치 못한 콧방귀를 뀌었다. 축복이요?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너무 쉽게 잊는군요. 요정의 영혼쯤 가볍게 통찰하는 마이아에게 씌우기에는 조금 멀리 나간 덤터기였으나 그는 가벼이 말을 이었다.

 "나는 망명 놀도이고 더군다나 페아노르 가문 사람이지요. 축복이요? 내가 권능들께 받은 것은 저주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로써 그들의 개입을 증거할 수 있지요. 그들의 잘난 소환과 심판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내 가문과 일족에 이런 운명을 내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선물의 군주여, 당신은,"

 켈레브림보르는 씩 웃으며 검지로 안나타르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안나타르가 입가를 올렸다.

 "적어도 에루께는 감사드려야지요. 이 텔페린콰르를 태어나게끔 하고 그에게 재능을 부여한 것이 유일자시니까요."

 그게 내게는 축복이 되지 못한다 해도 당신께는 크나큰 선물이 아닙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나타르는 배를 끌어안고 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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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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