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2018. 11. 4. 21:13

 "이제 그만 좀 해."

 그 말에 마지막 남은 미련마저 깨끗이 씻겨나간 것은 사실 당연했다. 사방에 연기가 자욱하고 불길이 치솟는데, 하늘 높이 솟아오르던 분수의 수반에는 시체가 가득하고, 밑단에 기대 쓰러질 듯 앉은 그의 옷깃은 붉은 기 어린 물에 젖어 있었으니까. 창백하게 질린 얼굴보다 차라리 그 핏자국에 더 생동이 넘쳤다. 유난히 흐트러진 무장이 거슬려 그는 무심코 투구 끈을 도로 매 주려다가, 반쯤 내민 손을 거두어 들였다. 한 발짝 뒷걸음질치자 발밑이 철벅거렸다. 낭자한 것이 물인지, 피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는 눈을 꽉 감았다.

 "거 참 쉽게도 말하는데."

 "그대는 질리지도 않아?"

 하지만 차마 상대의 표정을 마주할 용기는 낼 수 없었다. 언젠가, 언제였더라, 별 것 아닌 악몽이었다며 뻔한 변명을 둘러댈 때부터 그는 무력했던 것이었다. 대신 그는 아래를, 검은 듯 새빨갛고 탁한 듯 투명한 웅덩이에 이는 파장을 내려다보며 친구 위로 무릎을 꿇었다. 한쪽 무릎에 가슴을 눌린 그가 언짢은 듯, 그리고 정말 언짢기만 할 뿐인 듯 뒤척이자 그는 아예 체중을 전부 그 위로 싣고는 어림짐작으로 손을 뻗었다. 드러난 목에서 고작 반 뼘 올라가고서 손이 멈췄다. 친구가 낮게 조소했다.

 "이야기할 때는 눈을 봐야 예의지."

 그는 입 안을 와작 씹었다. 갈도르가 얼핏 그의 이름을 부른 것도 같았다. 태양이 떠오른 이래 변화는 불가피한 비극이었으니, 애초에 그들의 삶이란 것이 후린이나 후오르 등과는 달리 끝이 정해진 것이었고 곤돌린의 영화조차 먼 훗날 되돌아보면 하룻밤 꿈이나 다름없을 터였으니, 이 몰락 또한 예상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고작 몇 시간 남겨두고서 제 자신이 변하리라고는 좀처럼 생각지 못했었다. 냉정한 듯 무모하고 침착한 듯 맹목적인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설마 하니 뒤따르는 데 질릴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

아 진단메이커 재미있는 거 찾았는데 다음에 다른 애들로도 해 보고 싶다...는 그냥 요즘 너무 뭘 안 씀...

몇 시간 뒤에 글로르핀델이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맥락 없는 짜증을 느끼는 것도 보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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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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