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글 2019. 1. 16. 20:25

뭔진 모르겠고 수소님이랑 썰 풀었던 길갈라드 땡땡랄웬 아들 설



 "부모가 죽는 걸 느낀 적 있습니까?"

 켈레브림보르는 만지작거리던 은사 뭉치에서 시선을 떼어 왕을 바라보았다. 얄궂다면 얄궂은 질문이었기에 그는 함부로 답할 수 없었고, 하기야 길갈라드 역시 흔치 않게 긴장한 기색을 보이고 있기는 했다. 한 손에는 왕관을, 다른 한 손에는 빈 잔을 들고서 젊은 왕은 아무 말 없이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켈레브림보르는 나름 정제된 문장을 내놓았다.

 "도리아스가 무너질 때 넌 나와 함께였지요, 에레이니온. 나는 쿠루핀웨의 죽음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발라르의 검은 모래밭에서 그가 주저앉아 소리없이 울었을 때, 고통의 원인을 차마 짐작조차 하려 들 수 없었을 때 그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마른 몸이 있었고, 그는, 상처 하나 없는 작은 손에 탁한 보석 조각을 쥐어주던 아비와, 칭얼이는 조카를 어쩔 줄 몰라 와락 끌어안던 백부를, 그들의 형제들을 생각했다. 천 년 전의 이야기. 그리고, 별빛도 없이 어둑한 미스림 호반에서, 다시 한 번 맹세를 읊는 그림자들 사이로 가슴께를 부여잡던 어린 날이 있었다.

 "무슨 느낌이었습니까?"

 "네가 느낀 것과 크게 달랐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에레이니온. 무엇이 알고 싶은 겁니까?"

 길갈라드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린돈의 겨울 밤은 춥지 않아 화로는 싸늘했고, 탁자의 술병에는 여태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고리버들 의자에 걸터앉은 왕은 웃옷 앞섶을 풀어헤친 채였다. 선원의 아들 - 켈레브림보르는 저가 어느새에 미소하기 시작했는지 알지 못했고, 구태여 입꼬리를 내리지 않았다. 핀웨 놀도란은커녕 핀로드의 것에도 턱없이 못미치는 방에 앉아, 열린 창과 닫힌 문 가운데, 그는 몸을 기울여 왕의 잔을 다시 채웠다.

 "에레이니온. 무엇이 알고 싶었습니까?"

 해변에서 그가 처음 무릎 꿇은 이래 길갈라드는 거듭 지혜로운 친족을 얻어 왔으니, 손끝을 붙잡고 종알대던 소년은 사라지고 없었으나, 그럼에도 켈레브림보르는 질문을 바라며 물었다. 길갈라드는 실없이 웃었다.

 "그렇지요, 한참 후에야....... 그걸 느낀 것이라 할 수 있다면."

 그리 말하며 길갈라드는 잔을 입가에 대었고, 입술이 희게 질리도록 짓눌렀다.

 "에레이니온."

 그는 티리온을, 포르메노스를, 미스림을, 힘라드를, 나르고스론드를 살아남았다. 음성의 떨림을 감추는 일쯤은, 이름 하나로 주의를 돌리는 일쯤은 어련히 손쉬워, 켈레브림보르는 가만히, 왕이 잔을 도로 내리고 눈을 감는 것을 지켜보았다. 죽은 왕들의 젊은 후손은 잠결에 말하듯 속삭였다.

 "텔페린콰르. 도리아스 때, 그 해 겨울에, 내가 몹시 앓았던 걸 기억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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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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