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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9.09 :: [켈레델] 나의 사랑이 탄로 난 것은
  2. 2018.09.06 :: [마에마글+엘쌍] 범주
  3. 2018.09.03 :: [안나켈리] Do your worst
  4. 2018.08.31 :: [핀마에] Fools
  5. 2018.08.31 :: [핀웨 가] 집에 가는 길
  6. 2018.08.29 :: [아에안드] 호수
  7. 2018.08.26 :: [깊은골] 거미줄에 대하여
  8. 2018.08.26 :: [안켈] Atheist
  9. 2018.08.25 :: [글로엑셀] 한여름 밤
  10. 2018.08.24 :: [켈레델] Wood-eave
톨킨/글 2018. 9. 9. 13:42

이거 앞부분... 쓴 거... 현대물 켈레델 고등학교 연극. 제목이랑 밑에 대사는 원래 연극에 있는 대사임

 

 그건 순전히 밤바람 때문이었다고, 돌이켜볼 때마다 켈레고름은 스스로에게 우기고는 했다. 가설 무대의 조명은 지나치게 밝았고, 풀밭에 열 맞춰 놓인 흰 플라스틱 의자들은 야광인 양 어슴푸레 빛을 뿌렸고, 자식이나 형제, 친구를 위해 기꺼이 관중 역을 맡아준 이들의 얼굴은 하나로 뒤섞여 시야 언저리에 멀겋게 둥실댔다. 무대 아래서 플룻이 애처로이 긴 음을 끌었다. 대사를 마친 그가 들어올렸던 손을 천천히 거두자 기다렸다는 듯 바람이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었는데, 바람결을 따라 반쯤 생각없이 돌아본 눈길에 막 흩뜨러지는 검은 머리카락이 잡힌 것이야말로 그 사고의 원흉이었다 할 만했다.

 골판지 관에 누운 줄리엣이 실눈을 뜨고는 어렴풋이 입꼬리를 말았다. 켈레고름은 대사를 잊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했었는지, 다음 할 말이 무언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발밑 어디쯤에서 콘서트 밴드가 점차 소리를 높였다. 작은북의 향현이 드르륵 떨리는 박자에 맞춰 켈레고름은 한 발짝씩 줄리엣을 향해 다가갔다. 연인의 가느다란 눈동자에 약간의 혼란과 흥미가 어렸다. 그는 줄리엣의 머리맡에 무릎 꿇으며 왼손에 든 장난감 단도를 기억해냈다, 무시했다. 줄리엣은 완연히 웃고 있었다.

 난데없는 영감에 켈레고름은 크게, 부러 또박또박 외쳤다.

 "줄리엣, 줄리엣, 이제 일어나요!"

 그는 칼을 내던졌다. 등허리를 받쳐 올리는 손길에 줄리엣은 천연덕스레 몸을 일으켰고, 입술이 맞닿자 팔을 뻗어 그의 목에 감았다. 새어나오는 숨이 입가를 간질였다. 관 벽을 사이로 웃음이 엉켰다. 문득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싼 줄리엣이 입을 떼며 읊었다.

 "아, 나의 사랑이 탄로 난 것은 밤의 어둠 때문이야."

 그리고 아레델은 매끄럽게 일어나 그를 잡아끌었다.

 

 동생과 사촌이 무대 중앙으로 나오는 것을 보며 마글로르는 조용히 지휘봉을 내렸다가,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차마 객석을 살필 수는 없었다. 그는 착잡하게 말했다.

 "얘들아, 악보 넘기자."

 

 

*

현대 에유 핀웨 가 나이 순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글로르 둘 윗학년이어도 아예 졸업했다가 도와주러 모교 온 거여도 좋을 것 같음... 그리고 갑자기 오케스트라부 요정 애들 보고 싶어졌음ㅋㅋ ㄷㅇㄹ이랑 ㅇㅅㄹㅇ이랑 ㅅㄱㅌ랑... ㅇㄻㄹ 가끔 와서 성악 했음 좋겠고... 틴팡이랑 이바레랑 졸업했으면서 허구한 날 놀러와서 후배들 놀려먹었으면 좋겠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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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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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9. 6. 21:16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아몬 에레브 성곽 안에서, 안드람의 장벽 위에서, 람달 요새에서, 그들은 핀웨 가 투르곤의 자손이었으며 그에 걸맞게 대우될 것이었으나 그 외 모든 땅에서 그들은 일개 어린 병정들일 뿐이었다. 마글로르의 말마따나 페아노르 가문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은 여력이 있을 때나였으니까. 그리고 마에드로스는 충성의 맹세를 요구하지 않았고, 그들도 딱히 맹세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 규칙은 쌍방에게 편리했다.

 하지만 새로운 장소에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것임을 그들은 불행히도 모르는 채였다.

 "사 달라고 해도 될까?"

 엘로스가 소곤소곤 물었다. 엘론드는 몇 발짝 앞에서 유독 건장해 뵈는 난쟁이 하나와 낯선 억양으로 대화하는 마글로르를 곁눈질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서 그들이 페아노르의 아들들의 손님인지 백성인지는 아직 분별할 수 없었고, 그는 웬만하면 신중하게 행동할 참이었다. 엘로스는 하늘이 다 무너진 얼굴을 하고서는 칭얼거렸다.

 "그렇지만, 엘론드, 저거 너무 예쁘지 않아?"

 "비싸 보이잖아!"

 잇새로 타박하면서도 엘론드는 내심 그에게 동의했다. 예쁘기는 더럽게 예뻤다. 더군다나, 둘 다 결코 입밖에 내지 않을 사실이었으나, 좌판의 순은 모형은 텔레리 배를 꼭 닮아 있었다. 팔뚝 하나 길이에 무척이나 정교하게 조각되어 등불 아래 거의 노을빛으로 반짝이는. 옛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벨레고스트의 드높은 천장과 휘황찬란한 거리에, 산맥의 뼈를 드러내는 공동에 기가 죽어 있던 엘론드는 그 모형의 값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고,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곁에 선 병사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속삭였다.

 "어차피 들고 가지도 못하잖아. 갖고 싶으면......"

 "갖고 싶은 게 있느냐?"

 엘론드는 그대로 굳었다. 시가지는 난쟁이들로 북적였고, 마글로르는 너무 멀리 있었고, 마에드로스는 얄밉게도 허리를 푹 굽혀 가며 그들과 눈을 맞췄고, 천하태평한 엘로스는 냉큼 모형을 가리켰다. 엘베레스여 맙소사.

 그러나 마에드로스는 좌판에 성큼 다가서 난쟁이에게 뭐라 말했으며, 그러자마자 곧장 난쟁이는 큼직한 상자를 꺼내 모형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한 손으로 들기는 애매한 부피에 마에드로스는 엘로스를 손짓해 불렀다. 여전히 희게 빈 머리로 용케 엘론드는, 과연 저게 내 쌍둥이가 맞는가, 라는 의심을 해 냈다.


 그날 숙소로 돌아간 엘론드가 배를 살 돈은 어디서 난 거냐 물었을 때, 마글로르는 한참을 소리내어 웃더니 뻣뻣한 눈으로 대답했었다.

 "여기 난쟁이들 절반은 카란시르에게 빚이 있고, 다른 반은 내 형님께 빚이 있지. 이들은 가급적 그걸 갚고 싶어하니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 않는다면, 하는 말은 덧붙여지지 않았으나 놓칠래야 놓칠 수는 없었다.



*

마에가 랜덤 난쟁이한테 그쪽 부친이 내 동생에게~ 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못 썼다... 속...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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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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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9. 3. 23:54

뒷부분 유혈주의...라고는 하지만 별 거 없음



 걷는 것을 좋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배낭 하나 걸쳐메고 홀로 크하잣둠에 다녀오는 길에, 두 그루 호랑가시나무 아래서 안나타르를 만나 함께 걸었던 적이 있었다. 아침 하늘은 티 하나 없이 깨끗했더랬다. 만났다고 하기도 어려웠던 것은 안나타르가 나무 기둥에 몸을 가리고 섰었기 때문이었고, 또 그가 안나타르를 보고 눈웃음으로 인사하자마자 기다렸단 듯 그의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보조를 맞췄던 탓이었다. 그 움직임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켈레브림보르는 그만, 설마 날 마중나온 거냐, 물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조악해."

 열 발짝 걷기도 전 무작정 건네진 악담에 그는 이마 언저리까지 흘러내린 화관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답했다. 조악하다니, 요정 아닌 누구라도 동의 못할 평이었다. 요정이라도 유난히 입이 거친 자가 아니라면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을 터였고. 꽃잎은 흉져 있었고 나뭇잎은 칙칙했지만, 명주실에 꿰여 묶인 유리구슬은 몰취미했지만, 그러나 저러나 켈레브림보르는 화관이 썩 마음에 들었었다.

 "도대체 그런 건 어디서 난 거야?"

 "어디게? 알아맞히면 이건 널 주지."

 그딴 걸 내가 원할 것 같아? 안나타르는 궁시렁거리면서도 흥미롭다는 듯 고양이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서 코를 가까이 대고 요란하게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켈레브림보르는 킬킬거리며 안나타르를 밀쳐냈다. 그가 감정을 드러낼 때면 그 결이 어떻든 켈레브림보르는 미묘한 만족감을 느끼고는 했다. 세상에 오롯이 매인 존재, 급은 덜할지언정 발라르와 같은 이. 그러니 이 자는 아르다를 바라보아야 옳았다.

 "흠. 모리아 서문에서 두 번째 마을. 거기가 아니면 이런 걸 팔 곳이 없는데."

 "미안하지만 장소도 경위도 틀렸어. 산 게 아니라 받은 거거든."

 안나타르는 세공장에서 금사가 형편없이 엉킬 때와 똑같은 동작으로 양손을 펴 들었다.

 "권능을 쓴다면 불공평하다고 할 테지?"

 "이번만은 봐 주기로 할까? 네 마음대로."

 의식 언저리에 유연하게 와 닿는 탐침은 친숙한 것이어서, 그는 별 노력 없이 기억을 갈무리해 치워 놓았다. 그러고는 씩 웃으며 난쟁이들이 이제 광산을 한 층 더 확장하기로 했다더라며 화두를 던졌다. 안나타르는 능란하게 말을 받아 이었다. 탐욕이 도를 넘었군. 땅 깊이 무엇이 있나 제대로 알지조차 못하면서 눈 닫고 귀 막아 파고드는 꼴이 실로 오만하지 않은가. 언제나처럼 과격한 의견에 켈레브림보르는 웃음을 흘렸다. 과장 반에 남은 것 반은 허풍이라. 허나 걸러듣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어찌 되었든 '안나타르'의 힘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광산에서 별달로, 무역로로, 엘렌나의 확장 으로 이리저리 경쾌하게 튀는 대화 틈바구니에 그가, 네 친구네 손자는 조부를 그리 닮진 못한 모양이야, 자못 능청스레 끼워넣자 켈레브림보르는 푹 한숨을 쉬며 화관을 벗어들었다.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글쎄, 너무  문제가 쉬웠잖아? 방심하지 마, 페아나린케."

 "머리나 갖다 대시지요, 아 위대하신 아울레의 권속이여, 서녘의 사자여. 관을 씌워 드리리다."

 검은 나무가 현무암 기둥처럼 솟은 티리온 궁정에서나 어울릴 법한 허리숙인 인사에 안나타르는 박장대소하며 무릎을 굽혔다. 켈레브림보르는 화관을 얹으려다 말고 손을 멈췄다.

 "조악하다면서?"

 "조악하든 말든, 꽃은 시든 뒤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냥 꽃은 아니지, 우리 반지가 곧 금속과 보석인 것은 아니듯."

 선물의 군주여, 이 화관은 은의 손이 받아 자유로이 내드리는 선물일세. 꽃은 사랑스러우나 화관은 사랑할 만하고, 자유로운 선물은 사랑받음을 필요치 않아. 안나타르는 반박하려는 듯 입을 벌렸지만 켈레브림보르는 짐짓 다시 걸음을 떼었다. 안나타르는 성큼 그를 쫓았다.

 "그래서. 버릴 거야?"

 "사랑할 필요 없다면서?"

 켈레브림보르가 키득거리며 되물었다. 맙소사, 안나타르, 삐진 거야? 마이아는 새삼스럽게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그건, 걷는 것을 좋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의 일이었고, 가을바람은 선선했고, 등뒤에는 위대한 난쟁이의 도시가, 저 앞에는 오스트 인 에딜이 있었다. 늘어진 그림자는 서녘을 가리켰다. 그는 안나타르의 뒷목을 잡아내려 슬쩍 화관을 씌웠고, 떨어지는 손을 안나타르가 붙잡아 손가락을 엮었다. 생각해 보니까, 말려서 간직하는 게 낫겠어. 그러면서 마이아는 머쓱하니 웃었다.


 그때 넌 참 예쁘게 웃었는데. 난 있지, 쓸데없는 것만 물려받아서, 웃으면 딱 아버지를 닮았단 소리도 많이 들었어. 전에 했던 이야기던가. 터진 입술이 잔뜩 쓰리도록 입꼬리를 당기면서 켈레브림보르는 눈을 치떴다. 안나타르는 뒤로 물러나 쭈그려 앉았다.

 "페아나린케. 어리석고 안쓰러운 내 사랑."

 화려한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없었지만 턱을 잡아 추켜올리는 손길은 집요했다. 그는 안나타르가 뭐라 말을 이을지 알고 있었다. 몇백 번을 반복해 이골이 난 설득이었다. 그러니 딱 한 번, 딱 한 번만 선수를 쳐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이곳에는 듣고 비웃을 이조차 없잖은가.

 "반지를, 말야, 안나타르. 세 반지를."

 "그래, 내 사랑, 이제 돌려줄 생각이 든 거야? 그럼 그렇지!"

 왜 그가 사랑한 이는 이 순간에조차 찬란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의 모든 말과 몸짓에 젖어든 욕망은 어쩜 그리 추악해야 하는지. 켈레브림보르는 가까스로 얕은 숨을 들이쉬었다.

 "내가 세 반지를 네게 선물한다면, 받아들이겠어?"

 채광창으로는 햇빛이 환하게 비쳐들었다. 누구였더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요정이 있었다. 곤돌린 출신이었는데. 공방을 확장할 때 창유리를 만든 게 그였다. 창에 부리부터 내리꽂히는 새가 하루에도 한둘이 아니게 되고서야 얇은 종이를 덧대는 걸 허락했었다. 새 때문에 그를 실컷 닦달했던, 그, 켈레보른을 따라왔던 신다르 중 하나였나, 그녀는 그가 온실 짓는 데 크게 도움이 되자 기꺼이 그와 화해했고. 그녀에게 동생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유독 인간을 좋아해 누메노르인 제자를 여럿 들였었던 이였는데, 장례 때마다 꼬박꼬박 먼 바닷길을 다녀오고는 했었지.

 핏물 흐르는 돌바닥은 카란시르를 따르던 이의 솜씨였고, 물이 빠져나가는 배관을 설계한 건 남쪽에서 올라왔다는 인간 청년이었다. 바닥을 구르는 세공 도구는 어느 난쟁이가 배움의 대가랍시고 넘긴 것들이었고, 그리고, 책장을 가득 메운 것은. 눈에 닿는 것이 고작 방 하나일 때 세계는 얼마나 좁아지는지. 눈에 닿는 것이, 고작해야 얼굴을 형편없이 일그러뜨린 사람 한 명일 뿐일 때.

 "선물해?"

 목소리가 거칠었다.

 "내가, 안나타르, 세 반지를, 자유로운 선물로써 네게 내준다면, 받아들이겠어?"

 "그 반지들은 원래 내 것이야. 온전히. 지금 네 처지를 모르나?"

 딱딱하게 가라앉은 답변 밑을 메운 분노를 듣기는 까다롭지 않았다. 안나타르가 그를 아는 만큼, 어쩌면 그것보다도 훨씬 더, 그는 안나타르를 이해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근거없는 믿음도 아니었다.

 "상황 파악 못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닐 텐데. 돌려받아야 할 게 있는 자는 너야."

 주먹을 보는 것보다 목이 꺾이는 게 먼저였다. 켈레브림보르는 실성한 듯 웃다가 혀를 깨물었고, 쇳내에 구역질하며 또 다시 웃었다. 안나타르, 안나타르, 나는 네게 기회를 주는 거야. 안나타르는, 사우론은 단검을 벼리며 짓던 미소를 그대로 입가에 띄우고서 손톱을 그의 목줄기에 박아넣었다. 어디를 쳐야 할지에 대한 완벽한 확신은 그들에게 공통된 것이었기에 그는 기어이 부은 혀를 움직였다.

 "하지만, 고르사우르, 주는 건 내 자유지."

 그러니 실컷 발악해 봐.



*

집어넣을 구석은 못 찾았지만 켈레브림보르가 핀로드 생각도 했었음 좋겠고... 톨 시리온 생각도 했었음 좋겠고... 골룸이 생일 선물 타령한 것도 넣고 싶었 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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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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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8. 31. 16:32

Fools 노래 진짜 좋음... 우리가 모든 걸 망치면 어쩌지? 그리고 우리는 바보처럼 사랑하고, 가진 전부를 잃어버려...



 두려움이란 것은 끈질겨서, 제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잠시라도 방심할라 치면 숨통을 콱 죄어오고는 했다. 마치 지금처럼, 마에드로스가 지도 위로 왼손을 뻗어 말을 움직이고, 흘러내린 붉은 머리카락이 안파우글리스를 스칠 때처럼. 마에드로스는 여덟 꼭지 별을 인 나무 병사 하나 옆을 검지와 중지로 두들겼다.

 "벌판 쪽을 지키는 건 무의미하겠지. 차라리 아글론으로 모을까? 여기는 보르에게 맡기고."

 당장은 망을 되살리는 데 힘써야 하지 않겠어, 하고 핀곤은 말끝을 흐렸다가, 뒤로 물러나 의자에 걸터앉았다. 마에드로스는 어슴푸레 웃었다.

 "피곤하면 이만 쉬자."

 "루산돌."

 사촌은 조금 더 분명하게 미소지었다. 알쿠알론데에서 표정이 딱 저랬었지. 핀곤은 입가를 문질렀다. 맹세 직후에도. 그가 기억하기로는, 저 다 괜찮을 거야, 하는 미소가 의뭉스러운 기색을 띠기 시작했던 게 그 즈음부터였다. 달라진 건 그 자신의 시선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페아노르와 핀골핀 앞에서 마에드로스가 피와 어둠을 외쳤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오만하게 홍소하며 영원한 어둠을 불러내리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으니까. 핀곤은 태연한 척 말했다.

 "우리가 모든 걸 망치면 어쩌지?"

 "어쩌긴. 망치고 나면, 어떡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을 텐데."

 기다렸다는 듯 돌아온 대답에 그는 살짝 고개를 저었으나, 더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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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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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8. 31. 16:29

친구한테 우리 장르 오페라 나온대!! 했다가 뭐 뭐가 나오는데 셰익스피어 오페라 나온다 그러면 누가 알아듣겠냐 뭐임 해서 곤돌린의 몰락... 해줬음...



 "잘하던데."

 "끔찍했어."

 "형 눈 괜찮아?"

 마글로르는 입가를 우그러뜨리며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서 쿠루핀이 키득댔고, 아레델은 조수석 등받이를 걷어찼다. 제 차가 아니라고 마글로르는 콧노래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발자국 남으면 큰형이 안 좋아할 텐데."

 "형 걱정도 다 해주시고, 다 컸네, 티엘코르모."

 켈레고름은 운전석 등받이를 걷어찼다. 마글로르는 기어이 웃음을 터뜨리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밴이 끼이익 소리와 함께 멈춰 섰다. 주택가 사이 골목길을 달리고 있는지라 곳곳에 흰 정지선이 그여 있었지만, 그날따라 행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보다 헤드라이트가 밝았다. 다시 속도를 높이면서 마글로르는 한 손으로 라디오를 틀었다.

 쿠루핀이 곧장 볼륨을 죽였다. 마글로르가 너 그럴 거면 맨 뒤로 가, 하고 타박했다. 켈레고름과 아레델은 트렁크 쪽 접이식 좌석을 돌아보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마글로르는 쿠루핀과 잠시 신경전을 벌이다가 왈칵 성을 냈다.

 "노래 좀 듣자!"

 "형이 하면 될 거 아냐."

 아까도 들었잖아! 마글로르는 운전대를 거칠게 꺾었다. 쿠루핀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백미러에서 눈을 마주친 켈레고름과 아레델이 낄낄거렸다. 실수였다.

 "그러지 말고 쟤네한테 재연이나 해 달라고 해."

 마글로르가 다시 한 번 아슬아슬하게 정지선에 앞바퀴를 맞추며 말했다. 쿠루핀이 반짝 눈을 빛냈다.

 "아 싫다고!"

 "난 연극반 그만둘 거야."

 뒷자리에서 이는 소란은 무시한 채 마글로르는 계속해서 쿠루핀을 충동질했다. 왜 그 발코니라든지, 키스 장면 말야. 내 노래보단 재미있을걸?

 "안해!"

 켈레고름이 기함했다. 마글로르는 운전대를 퍽퍽 치며 웃었다.

 "리허설 때도 그렇게 굉장했어? 와우, 동생아, 잘하던데. 키스를 아주......"

 "운전이나 똑바로 해!"

 "리허설 땐 안했다고!"

 아레델이 덧붙인 말에 마글로르는 경탄스런 애드리브 어쩌고 중얼거렸다. 켈레고름은 도로를 주의깊게 살폈다. 다음 정지선에서 아주 그냥 확.

 "나도 연극반이나 할 걸 그랬어. 밴드는 목만 아프고......"

 "루밀 그 미친 놈."

 "워, 진정해. 아버지 은사님이신 거 몰라?"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 사촌한테 연인 역할을 시키시나, 아레델이 투덜거렸다. 마글로르는 좀처럼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등학교 연극이니까 사촌지간을 내세우면 순수할 거라 생각하셨나 보지. 지금쯤 후회하고 계실 테지만."

 "순수했어!"

 아레델이 말하자마자 쿠루핀이 첨언했다.

 "그 애절한 키스만 빼면."

 "나머지도 상당히 불순했는데? 오 로미오, 당신의 이름은 왜 로미오인가요! 맙소사, 너희가 아버지랑 숙부님 얼굴을 봤어야 했다니까."

 "다른 이름이 되어주어요! 형, 개명할 생각 있어?"

 "뭐? 누가 개명해?"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 끼어들었다. 온통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금종이를 주렁주렁 매단 형체가 불쑥 트렁크에서 몸을 내밀자, 마글로르는 귀청 떨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아레델과 켈레고름은 침착하게 귀를 막았다. 멀뚱멀뚱 밴 안을 둘러보던 핀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 안녕, 마칼라우레. 난 이릿세랑 같이 내려줘."

 "지금 당장 내려!"



*

핀곤: 근데 넬료는 어딨음?

마글이: 넌 왜 형 트렁크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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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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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8. 29. 17:14

모종의 에유... 친구한테 스팀펑크랑 마녀물 합치면 무지 재미있다고 주장하다가 여기까지 왔음... 옛날에 읽었던 소설 중에 호수 괴물이 주인공 엄마인 척 꾸미고 주인공을 마녀로 모는 그런 거 있었는데 제목 생각나면 한 번 더 읽고 싶다ㅎ



 기차는 역에 멈춰 그들을 떨궈냈다. 키큰 소나무 하나 외따로 선 추수 지난 벌판이었다. 철로 끄트머리가 가리키는 곳에는 꼭대기 깎인 언덕이 솟아 있었고 형제는 남쪽 대도시를 떠올렸다. 하릴없는 생각이었다. 아에그노르는 형에게 거친 상앗빛으로 웃었다. 둘은 짐가방을 끌며 맨흙 드러난 길을 걸었다. 첫눈이 내렸다. 그들에게나 첫눈이지 이 땅은 올 겨울 이미 몇 번 눈을 맞았으리라. 앙그로드가 눈송이를 잡으려는 시늉을 했다.


 언덕 발치로 다가갈수록 띄엄띄엄 벌판에 혹처럼 돋아 있는 집들 사이 간격이 줄었다. 오래된 목책이 시내를 감싸고 있었다. 길은 곧았고 오르막은 가팔랐다. 문지기 하나 없는 외문을 지나 둘은 목조 건물 사이 울퉁불퉁하게 포장된 도로를 걸었다. 온통 갈색으로 차려입은 꼬마 아이 하나가 골목길 언저리에서 그들을 빤히 보다 말고 사라졌다. 앙그로드는 외투 목깃에 댄 흰 모피를 만지작거렸다가 스스로 무안했던지 고개를 살짝 저었다. 뼈와 가죽 뿐인 회색 고양이 하나가 담벼락에 앉아 입을 쩍 벌렸다.

 "살풍경하네요."

 저가 말해놓고서도 아에그노르는 사람의 음성이 빈 시가지에 울리는 것에 놀랐으나, 앙그로드는 단조롭게 대답했다.

 "개척자 마을 같지는 않구나."

 영주관이 저기겠지, 하면서 앙그로드가 턱짓한 건물은 그나마 튼튼해 뵈는 이층집이었다. 건물을 둘러싼 쇠울타리에 아에그노르는 빈정이 상해 중얼거렸다.

 "어디 저기는 과연 문지기가 있나 봅시다."

 "그렇게 단정짓기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

 앙그로드는 앞장서 남은 거리를 올라갔다. 울타리에 이르렀을 무렵 아에그노르는 숨이 차 헐떡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시내를 내려다보듯 지어진 영주관조차 기껏해야 언덕 중턱에 있을 뿐이었다. 아에그노르는 언덕 꼭대기와 뒤편의 소나무숲을 기억하고는, 이걸 언덕이라고 불러도 되나 고민했다. 큰형님은 분명 언덕이라고 하셨었는데.

 문득 태엽 감는 소리가 들렸다. 곧장 눈을 든 아에그노르는 철책 위, 회전축 위에 앉은 자동인형을 보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회전축 주위로 쇠울타리 일부가 빙 돌아 수레 하나 지날 만한 길을 냈다. 역시나 앞장서 걸어들어가며 앙그로드가 허공에 던지듯 말했다.

 "아까도 있었다."

 아에그노르는 귀를 붉혔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앙그로드는 영주의 오른편에 앉았고, 아에그노르의 자리는 그 옆이었다. 영주 왼쪽, 영주의 아내와 앙그로드가 대화를 주도하는 사이 아에그노르는 식탁을 차근차근 둘러보며 영주 일가를 눈에 익혔다. 장년에 이른 엉주와 그 아내, 아들 한 명에 딸 둘, 그리고 아들 쪽 아내와 딸 둘이었으니 나름 대가족이었다. 아에그노르는 제 가족을 떠올리려다 말았다. 옆에 앉은 막내딸이 낮은 소리로 물어 왔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세요?"

 아에그노르는 포크 밑 짓이겨진 감자를 보고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배가 고프지 않군요...... 베릴."

 소녀가 생긋 웃었다. 그녀 건너편에 앉은 그녀의 언니는 공상에 빠진 듯 식사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얼굴은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에 푹 가려 있었고 더군다나 식당은 꽤 어두웠다. 아에그노르는 술잔을 손 안에서 굴리며 그녀를 유심히 보았다. 눈을 맞춰볼까. 베릴은 그에게 말을 몇 번 더 붙였으나 곧 흥미를 잃었는지 곁의 조카에게 돌아섰다.

 "브레길, 오늘은 뭘 했니?"

 아이가 묻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와락 재잘거렸다.

 "숲에, 호수에 갔어요! 히르웬이랑요. 뭐 맨날 그게 그거잖아요. 인어도 마녀도 못 봤어요. 오늘은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특히 마녀 말예요. 아까워라."

 "호수요?"

 앙그로드가 물었다.

 "아이 둘이 다니기는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에그노르가 덧붙였다. 안드레스가 고개를 들었다.

 "마을 아이들과 같이 다니니까요."

 "언덕 위 숲에 호수가 하나 있습니다. 소문은 무성한데 밝혀진 건 없죠. 궁금하시다면 내일 한 번 가 보시겠습니까?"

 브레고르가 제안하자 앙그로드는 덥석 그러자고 승낙했다. 아에그노르는 생각해 보겠다며 답을 미루고는 마녀라고요, 브레길을 보며 말했다. 브레길은 신이 나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호숫가에 반쯤 부서진 집이 하나 있는데 아무도 들어가본 적이 없다더라, 그런데 거기 마녀가 산다더라, 그 마녀는 태엽고양이를 갖고 있는데 그 울음을 들으면 신기한 꿈을 꾸게 된다더라, 인어와 이야기한다더라.

 괘종시계가 열 시를 알리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보로미르는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에그노르는 아내의 회색 머리에 입맞추는 영주를 보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날 밤, 아에그노르는 등잔을 찾아 들고 손님방을 나섰다. 더듬더듬 뒷문에 다다르자 바랐던 대로 철책 위로 인형 그림자가 눈에 띄었다. 그러면 그렇지. 저 밑 외문까지 돌아서 다녀야 했다면 아이들은 아마 들판에서 놀았을 것이었다. 자동인형은 다행히 문을 열어 주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목책을 마주한 아에그노르는 손쉽게 개구멍을 찾아냈다. 어른이 지나갈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그는 등잔 고리를 입에 물고 크게 세 발짝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그만큼 더 뒷걸음질 했다. 그리고는 그대로 달려가 도약했다.

 손끝으로 목책 상단을 붙잡고서 몇 번 버둥댄 끝에 아에그노르는 한쪽 다리를 넘겼다. 그리고 목책 반대편을 보고 질겁했다. 웬 가시덤불이야? 그는 다른 다리도 끌어당기고서 목책을 세게 걷어차며 뛰어내렸다. 마른 잎 위로 데굴데굴 굴렀지만 한 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그는 용케 쏟아지지 않은 등잔을 다시 손에 들고 나서 돌아갈 때는 들판 쪽으로 들어가야지, 다짐했다. 이제 호수를 찾을 차례였다. 히르웬 말대로라면, 수로를 따라가야 할 텐데.

 등잔을 높이 치켜들어 봐도 어둠은 그닥 걷히지 않았다. 아에그노르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무작정 숲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밤중에라도 길을 잃을 만한 숲은 아니지 싶었다. 그만큼 그는 벌써 이 특이한 마을을 믿고 있던 것이었다.

 그가 기어이 호수를 찾은 것은 돌이켜 보건대 새벽 세 시 언저리였다. 호반에 서자 한 순간, 숲을 지워내고 하늘을 똑같이 베껴넣은 듯한 풍경이 펼쳐졌었다. 잉크를 푼 듯 새까만 물에 별이 떠올랐다. 호숫가에 빽빽히 늘어선 소나무들은 달빛을 받아 검푸른 뭉텅이로 흔들렸다. 아에그노르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저 밑 기슭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그림자를 좇았다.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치맛자락이 사그락거렸다. 여인은 망설임없이 물가 굽은 나무를 타고 올랐다. 물 위로 드리워진 가지에 걸터앉아 그녀는 장화 신은 발을 탁 찼다. 수면이 일렁였다. 여인은 작게, 온 숲이 울리게 웃음을 터뜨렸다. 물결이 잦아들자 아에그노르는 물에 비친 인영의 머리카락에 별이 엮인 것을 보았다.


 아침, 아에그노르는 식당으로 가는 길에 안드레스와 마주쳤다. 그녀는 밤 산책은 즐거우셨냐 비밀스런 미소를 건넸고 아에그노르는, 언제 한 번 그 부서진 집도 구경시켜 달라 답했다. 히르웬이 까르륵 웃으며 그들을 지나쳐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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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8. 26. 18:48

거미 사체의 재활용

삼중수소님과 얘기했던 날조썰 바탕임 수소님 도리아스 꼬장파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owO)

 

 

 "첫 번째 의제는 이것입니다."

 엘론드가 운을 띄웠다. 엘로히르는 엘라단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아버지 진짜 이러실 거래? 엘라단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몰라. 내가 알아서 할게. 엘론드는 목을 가다듬고는 선포했다.

 "순찰 장비 제작을 포함하나 이에 한정되지 않은 용도를 위하여 어둠숲에서 거미 실을 수입할 것인가?"

 쌍둥이와 켈레브리안, 에레스토르를 제외하면 미리 아는 이가 없던 이야기였고, 둘러앉은 요정들이 당황해 서로만 쳐다보는 사이 엘라단은 벌떡 일어나 한 손을 드는 것으로 발언권을 요청했다. 엘론드는 아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존경하는 영주님, 고문 여러분, 저는 반대합니다."

 얼마 전 에레스토르의 멱살을 잡았던 일로 참관만 허락받았던 엘로히르가 신이 나 박수를 쳤다. 엘라단은 쌍둥이의 발을 꾹 밟았다. 적당히 좀 해! 엘로히르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했으나 엘라단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둠숲의 거미들 역시 웅골리안트와 연이 닿아 있잖습니까? 그것들이 자아낸 실에 어떤 어둠이 담겨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지만 어둠숲에서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까지 드러난 부작용은 없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에레스토르가 반박했다. 똑같은 생각이 동시에 쌍둥이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야 당신은 거미줄 옷 입고 다닐 일이 없을 테니까! 엘라단이 자리에 앉자 회의 자료를 뒤적이던 글로르핀델이 일어섰다.

 "보온성은 좋은 것 같은데요? 겨울 순찰도 짐이 퍽 줄겠어요."

 "거미줄이래잖아요!"

 엘로히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엘론드 눈치를 보며 엘라단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엘라단은 어깨를 들썩였다. 저리 떨어져, 징그러워.

 "공자님들 말씀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요. 사실 거미와 핀웨 가는 상성이 좋았던 적이 없으니까요."

 이어진 말에 엘로히르는 휙 휘파람을 불었다. 켈레브리안과 엘라단은 눈을 마주쳤다. 켈레브리안이 턱짓했다. 네 동생이다. 엘라단은 무릎 위 가지런히 놓았던 손을 살짝 펼쳤다. 아들이랑 의절하시게요? 친족 사이 일을 못본 척하며 에레스토르가 말했다.

 "꼭 옷을 지을 필요는 없지요. 뭐든 쓸 곳을 찾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둠숲과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수락하는 게 이로울 제안입니다."

 에레스토르가 앉자마자 글로르핀델이 다시 손을 들었다.

 "여차하면 바다에 던져버리죠!"

 또 한 번 박수 소리가 들렸다. 엘라단은 엘로히르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한 손으로 동생의 손을 꽉 붙들고서 그는 다른 손으로 손등을 토닥였다. 가만히 있자. 엘로히르가 나지막이 불평했다. 난 네가 내 편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엘라단은 웃으며 속닥였다. 너는 내 편이지?

 "잠깐, 잠깐만요. 로스로리엔에는 제의가 없었답디까?"

 린디르가 물었다. 켈레브리안은 앉은 채로 답했다.

 "어머니께서는 거절하실 생각이신 것 같더군요."

 "갈라드리엘님께서 거절하신다면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둠의 문제에 대해서라면 그분께서 가장 박식하실 테니까요."

 엘라단이 화색을 다 감추지는 못하며 물었다. 에레스토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로리엔에는 그분이 계시니 거미 실도 필요 없겠지요. 그리고 임라드리스는 로리엔과 다릅니다. 이곳에는 루시엔의 친족이 살고 있잖습니까? 루시엔께서는 드라우글루인의 꼬리와 글라우룽의 몸뚱이를 노래해 밤의 망토를 자아내셨다죠. 우리가 거미 실을 못 쓸 이유는 없을 듯 보입니다."

 엘로히르가 다시 엘라단에게 얼굴을 부볐다. 엘라단은 질색하며 몸을 뺐다. 애도 아니고 왜 이래? 엘로히르는 부루퉁하게 웅얼거렸다. 기분이 안 좋아. 그러고는 의자에서 스르륵 미끄러졌다.

 동생이 풀썩 쓰러지자마자 엘라단은 비명을 질렀다.

 "엘로히르!"

 두 번은 못하겠지만, 탐탁치 않은 회의를 끝내기 괜찮은 방법이었다.

 

 

*

어쨌든 우리의 실용주의자 엘론드는 거미줄 수입 계약을 체결했고... 새 망토 받은 날 쌍둥이는 망토를 고이 접어 전차몰이족 좀 잡고 오겠단 쪽지와 함께 침대 발치에 올려두고 로한으로 튀었다고 함.

그 다음부터는 얄짤없음 이로써 쌍둥이 장비 색이 두네다인 거랑 달랐던 이유가 밝혀집니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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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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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8. 26. 12:32

프랑켄 단하미 봐주세요 오졌음 항마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오졌... 안나타르가 일종의 무신론자였단 얘기도 재밌잖음

 

 

 그건 정말이지 뜻밖의 말이 아닐 수 없었고, 그래서 켈레브림보르는 시약병을 툭 떨구는 것으로 반응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미르다인의 기술로는 당연한 일이었으나, 실금 하나 없이 돌바닥에 내려앉은 약병은 데구르르 굴러 서랍 밑으로 들어갔다. 안나타르는 혀를 찼다.

 "공께서는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존재야 물론 믿지요. 나는 까마득한 고대에 그와 함께했던 아이누가 아닙니까?"

 그럼 그렇지, 켈레브림보르는 멋쩍은 한숨을 쉬며 무릎을 꿇고 앉아 서랍 밑을 들여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빼낸다냐. 그때 어깨를 잡는 손길이 있었다.

 "잠깐 비켜봐요, 페아나린케."

 안나타르는 공방에서조차 풀어헤친 머리카락과 질질 끌리는 옷자락을 고집했고, 켈레브림보르는 그럼에도 마이아에게 검댕 하나 묻는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바닥에 뺨이 닿을 듯 몸을 숙이자 주춤하고야 말았다. 안나타르는 손끝으로 바닥을 톡톡 치며 고양이를 부르듯 말했다.

 "이리 온, 어서."

 그러자 마치 누군가 민 것처럼 작은 유리병이 도로 굴러나오는 것이었다. 바닥에 무릎을 댄 채로 병을 들어올리며 안나타르는 화사하게 웃었다.

 "짠!"

 "그거 과시였죠?"

 에이, 좀 넘어가요. 안나타르는 천장을 보는 시늉을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일어나려는 기색이 없기에 켈레브림보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공방에는 둘뿐이었고 작업대에 가려 문은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인 질문에 알맞은 기회 아닌가.

 "존재를 믿으신다면, 뭘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안나타르는 유리병을 척 들어올려 왼쪽 눈 앞에 댔다. 투명한 푸른빛 시약에 금안이 일렁였다.

 "나는 육신을 입었으니 아르다에 영향력을 행사하지요. 그러나 일루바타르는요?"

 "유일자께서도 에아와 아르다를 돌보시지 않습니까? 당신같은 마이아르나, '세상의 권능'을 통해서요."

 "발라르는 이 땅을 버렸어요."

 당신을 보내지 않았느냐 되물으려다 그는 다른 말을 꺼냈다. 어차피 이 아울렌딜은 서녘의 사자처럼 굴 때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버리지는 않았지요. 그들은 여전히 이쪽 해안의 일에 개입하니까요."

 "어떻게 증거할 셈인가요? 저 린돈의 고리타분한 요정들처럼 당신들이 축복받았다 우기려는 건가?"

 켈레브림보르는 점잔치 못한 콧방귀를 뀌었다. 축복이요?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너무 쉽게 잊는군요. 요정의 영혼쯤 가볍게 통찰하는 마이아에게 씌우기에는 조금 멀리 나간 덤터기였으나 그는 가벼이 말을 이었다.

 "나는 망명 놀도이고 더군다나 페아노르 가문 사람이지요. 축복이요? 내가 권능들께 받은 것은 저주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로써 그들의 개입을 증거할 수 있지요. 그들의 잘난 소환과 심판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내 가문과 일족에 이런 운명을 내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선물의 군주여, 당신은,"

 켈레브림보르는 씩 웃으며 검지로 안나타르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안나타르가 입가를 올렸다.

 "적어도 에루께는 감사드려야지요. 이 텔페린콰르를 태어나게끔 하고 그에게 재능을 부여한 것이 유일자시니까요."

 그게 내게는 축복이 되지 못한다 해도 당신께는 크나큰 선물이 아닙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나타르는 배를 끌어안고 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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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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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8. 25. 22:59

4시대 발리노르임



 네 검을 보았어.

 난데없는 말에 친구는 응, 심드렁히 대꾸하며 그를 돌아보았고, 글로르핀델은 몸을 뒤로 젖히며 양손을 모았다. 발리노르의 저녁은 가운데땅의 한낮과 같았으니 지금 내리쬐는 금빛은 따지고 보면 정오의 햇살이렷다. 큼직한 유리창 바로 밑에 빈 공책을 펴두고 펜대를 굴리는 친구는 풀어진 자세 덕인지 무척 편안해 보였다. 익숙치는 않은 모습이었다.

 "어느 검?"

 그저 웃음이 났다. 글로르핀델은 수수께끼 놀이라도 시작해 보려다가 자칫 정작 하려던 말은 잊어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에 입을 꾹 닫고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엑셀리온은 다시 공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음표가 빼곡했다. 뭔가 억울해진 글로르핀델이 성급히 다시 말을 이었다.

 "오르크리스트."

 "아. 물에 잠겼을 줄 알았는데."

 "떨어뜨렸었잖아?"

 엑셀리온은 푸흐 실없이 웃으며 공책을 덮었다. 기지개를 펴는 팔에는, 깍지낀 손가락에는 상처 하나 없었고 그것마저 낯선 것이었다. 머리카락에 엮인 은사 장식에 햇빛이 반짝였다.

 "벨레리안드가 가라앉았으니 곤돌린의 폐허와 함께 수장되었으리라 여겼거든. 그걸 그대가 보았단 말이지."

 "그렇게 오래 전 일은 아니야. 임라드리스에서 일인데, 용을 잡으러 가던 난쟁이왕이 트롤 소굴에서 찾았다고 했었어. 경황이 없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나름 대단한 모험이었다던걸."

 사실 그 일행이 임라드리스에 꽤 오래 머물렀다는데, 나는 일이 있어서 마지막 날 밤에야 그와 마주쳤었어서. 부연하며 글로르핀델은 탁자 위로 양발을 턱 올렸다. 엑셀리온은 말리기도 귀찮다는 듯 물잔을 그의 발치에서 멀리 떼어 놓을 뿐이었다.

 "하지 전날이었어. 어째 많이 보던 검이 웬 난쟁이 양반 허리에서 달랑거리고 있길래......."

 "달랑거려?"

 "매달려 있길래! 매달려 있길래 한 번 살펴볼 수 있겠냐 물어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 된다고 하더구만. 죽은 벗의 검이라고 사정하니 오만상을 찌푸리며 허락하데."

 그제야 조금 흥미가 생겼는지 엑셀리온이 손에 턱을 괴며 그래서, 하고 맞장구를 쳤다. 글로르핀델은 아차 싶었다. 이제 할 얘기 별로 안 남았는데.

 "어, 그러니까, 그냥 보고서 돌려줬거든? 그게 다야. 음...... 그리고 그 난쟁이왕은 오르크와 싸우다 죽었댔나, 그랬댔고. 오르크리스트는 딱히 뭘 많이 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 중간에 요정왕한테 빼앗겼다더라. 그게 다야."

 "인간의 왕은 언제쯤 등장해?"

 한 박자 늦게 알아들은 글로르핀델은 뭐 잘못 먹은 얼굴로 앓는소리를 냈다. 엑셀리온은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 난쟁이왕 이야기나 더 해 봐. 어떤 인물이었어? 글로르핀델은 조금 어색하게, 스승 앞에서 배운 내용을 암송하는 학생처럼, 그러나 막힘없이 노래했다. 산아래의 왕, 돌 조각품의 왕, 은빛 샘의 군주께서 그의 왕궁으로 돌아오실 거라네!

 그가 기쁨에 젖어 흐르는 물줄기와 빛나며 타오르는 호수에 다다르자 친구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풀려 있었다. 그는 노래를 그치고 크게 친구를 불렀다.

 "엑셀리온."

 "한 번 만나봤으면 좋았겠다 싶네, 그 왕. 노래도 직접 들었었으면 좋았을 테고. 너른골 노래야? 호빗들이 부르던 걸 들은 것 같아. 같은 왕 이야기인 줄은 몰랐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친구는 여전히 멍한 눈빛이어서, 글로르핀델은 안절부절 못하다 발을 내리고 탁자 너머로 그의 손을 잡았다. 엑셀리온, 엑셀리온. 탁 초점이 돌아왔다.

 "가운데땅으로 돌아갔으면 해?"

 목메인 질문에 엑셀리온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영웅놀음 할 시대는 지났지. 됐어. 그래서? 용은 잡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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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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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킨/글 2018. 8. 24. 22:05

 기억 속 힘라드의 하늘은 드높았고 아글론 협곡으로 스며든 북풍은 별 달린 기치에 휘몰아쳤다. 어느새 가을이었다. 아끼는 말은 한참을 꼼짝 않는 주인이 답답했던지 이리저리 머리를 던지다가, 그가 그만하라 명하고서야 잠잠해졌다. 그는 한 팔을 높이 뻗어 말갈기를 손가락으로 빗어내렸다. 발리노르 혈통을 가진, 그들 가문의 가장 뛰어난 말이었다. 그는 문득 힘링 성벽에 기대 자신만만하게 웃던 큰형을 떠올리고는 팍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어쨌든 힘링은 그와 마글로르 사이 단단히 끼어 있었고, 마글로르에게는 기마대가 있었다. 그리고 옷시리안드의 동생들에게도.

 켈레고름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캄캄하게 시야를 막고 선 숲을 바라보았다. 저주받을 난 엘모스. 그 안의 등 굽은 검은요정에게 오랫동안 쿠루핀은, 또 힘라드에 방문하는 날이면 날마다 카란시르는 저주를 퍼붓곤 했더랬다. 감사할 줄도 모르는 파렴치한, 앙그반드의 종 같은 놈, 더러운 이간질쟁이. 그리고 그와 쿠루핀의 추측이 맞았다면 그 목록에 더해져야 할 이름에 대해 켈레고름은 생각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대신 그는 직접 난 엘모스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한 큰형의 친필 서한을 되새겼다. 금지한! 오만에 치가 떨렸으나 따르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교본을 베낀 듯한 텡과르 뒤의 인물은 그렇게 바르지만은 않다는 걸, 자신이 그에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밀 수 없다는 것을 켈레고름은 지나치게 잘 알았다. 그가 반항적으로 갈겨 쓴 질문에 대한 응답은 동쪽이 아니라 남쪽으로부터, 암로드의 초록요정 부관의 형태로 나타났었다. 그가 새를 날리기 직전의 일이었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며 북 찢은 서신은 아직 쿠루핀의 서재 구석을 굴러다니고 있겠지. 그래서 그 부관은 어쩌자고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건가. 벌써 한나절째였다.

 "......생각하십니까, 형님?"

 "뭐?"

 쿠루핀이 한심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았다. 동생은 아직 말 위에서 내리지 않은 채였고, 표정은 반 남짓 두건에 가려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읽기 쉬웠다. 켈레고름은 씩 웃었다.

 "떨리냐?"

 쿠루핀이 코웃음을 쳤다. 그 때 숲그늘에서 그림자가 흔들렸다. 켈레고름은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한 명이지?"

 "그러네요."

 쿠루핀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뒤편 숲과 거의 분간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암로드의 부관이었다. 켈레고름은 훌쩍 말 위로 뛰어올랐다. 그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말발굽은 땅에서 떨어졌고, 그는 희열에 웃어 마땅했으나 웃지 못했다. 찬 평원을 헤집는 바람은 곤두선 감각을 마구잡이로 긁어댔다. 쿠루핀이 그를 부르는 소리 역시 이에 잡아채였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난 엘모스가, 초록 망토를 두른 요정 병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에드로스가 그어 놓은 선에 아슬아슬하게 근접하는 셈이었다.

 "이릿세는? 내 친족은 찾았나? 왜 함께 나오지 않았지?"

 초록요정이 능숙하게 말을 멈춰세우고는 입가를 가린 천을 끌어내렸다.

 "찾았습니다, 깊이 들어갈 것도 없었더군요. 나오는 길도 그분께서 알려주셨지요."

 그리고 그는 망설이며 숨을 고르다가 덧붙였다.

 "떠나지는 못한다 하셨습니다. 아이를 가지셨다고요. 알고 계셨습니까?"


 눈을 떴을 때 북풍은 재와 먼지로 가득했고 하늘은 연기로 메워졌다. 기치는 찢어진 지 오래였다. 켈레고름은 검을 빼들었다. 넬도레스가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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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hi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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